[여의도풍향계] 결집이냐 분화냐…갈림길 선 여야, 리더십 향배는
[앵커]
집권여당과 거대 야당이 서로 다른 집안 사정으로 또 한 번 변곡점에 선 모습입니다.
국민의힘에선 차기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가시화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갈림길에 선 여야의 상황을 최지숙 기자가 여의도 풍향계에서 살펴봤습니다.
[기자]
현안마다 대립하며 국정감사, 예산 정국 등 연말까지 숨가쁜 일정을 이어온 여야의 시선이 이제 당내로도 향하고 있습니다.
공통의 화두는 '리더십'. 다가올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 자연스럽게 당의 구심점을 향해 쏠리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두 차례 선거 연승에도 장기간 내홍과 설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집권여당은 가처분의 산을 넘어, 일단 지난 9월 '정진석 비대위' 체제로 새 닻을 올렸습니다.
임기는 6개월로 내년 3월 종료되는데, 비대위 체제 연장보다 전당대회를 통한 당대표 선출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한동안 내년 봄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던 '전대 시계'는 최근 다시 빨라졌습니다.
발단이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관저 회동.
윤 대통령이 당권주자를 포함한 여당 의원들과 최근 잇단 만남을 가진 사실이 알려진 것인데, 같은 시기 당내에서 '3월 초 전대론'이 급물살을 탔습니다.
이른바 '윤심'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 배경입니다.
물밑에서 움직이던 당권주자들은 본격적인 몸풀기에 나섰습니다.
자천타천 거론되는 후보군만 10여명. 아직은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는 가운데, 저마다 존재감 과시가 한창입니다.
주자들은 윤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공식적인 공약 발표에 나서고, 전국을 돌며 당원들과 접촉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차기 당권의 판도를 좌우할 '전대 룰'도 관심사입니다.
당원 투표와 국민여론조사 비율을 현행 '7 대 3'에서 최대 '9 대 1'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는데, 결과에 따라 주자 간 유불리가 선명하게 갈릴 전망입니다.
당내 혼란상에 대한 도의적 책임으로 한 발 물러났던 친윤계 핵심 인사들도 다시 전면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친윤계가 주축이 된 공부모임 '국민공감'의 지난 7일 출범식에는, 소속의원 절반 이상이 참석해 의원총회를 방불케 했는데요.
불화설이 제기됐던 권성동, 장제원 의원도 나란히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앞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운을 뗀 '수도권·MZ세대 대표론'을 놓고선 지도부와 친윤계 간 파열음이 일기도 했습니다.
"전당대회 심판을 보시는 분이잖아요. 그런 얘기를 자꾸 하니까 일 잘하고 있는 한동훈 장관 차출론도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심판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이야기지, 그것이 왜 심판이라서 해서는 안 될 이야기입니까."
당내 일각에선 이른바 '새 인물' 차출론도 흘러나온 가운데, 그 중심에 섰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일단 선을 그은 상태입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춘추전국시대 속에 결국 윤 대통령의 의중이 당권주자 압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단일대오로 대여 투쟁을 이어온 민주당은 오히려 집안 사정이 조금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 속사정도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이재명 대표가 '측근'으로 꼽았던 두 인물을 재판에 넘긴 검찰의 칼끝은 사실상 이 대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와 주변인들에 대한 계좌추적 등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며 이 대표는 '언제든 털어보라'고 정면으로 응수했지만,
"검찰이 수사를 해야지 쇼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언제든지 털어보십시오."
고심은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생략한 이 대표는 SNS에 '가장 이재명다운 길을 걷겠다'며 '함께 해달라'는 말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이 대표는 이와 함께 '민생'을 내걸고 흔들림 없는 행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용적 민생 개혁, 더 굳건한 민주주의를 향해 거침 없이 나아가겠습니다. 정치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그런데, 당내 기류는 어쩐지 조금 달라졌습니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을 맹비난하며 검찰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해 맞서왔는데, 일각에선 의구심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아직 집단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지만 민주당에선 최근 비이재명계의 목소리가 부쩍 커졌습니다.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다', '스스로 문제를 풀라'는 등 이 대표를 향한 비명계의 공개적 압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로우 키'를 유지하던 이 대표도 검찰 수사를 작심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목표를 정해놓고 조작을 해서 정치 보복, 정적 제거 수단으로 국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점을…"
내년 총선과 맞물려 당내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당심의 균열을 막을 비전 제시와 돌파구 찾기가 시급해진 상황입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선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싸울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를 놓고 고심하던 처칠이 지하철로 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결연한 항전 의지를 들은 처칠은, 국민의 목소리를 따릅니다.
여야는 지금 총선을 의식한 구심점 찾기에 분주하지만 민심을 살피는 정치의 근본, 그 초심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국민을 좇고 국민으로부터 답을 얻는 것, 바로 여기서 새로운 리더십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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